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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테크 뉴스

보스턴 다이내믹스, 돌고 돌아 현대차의 품으로 -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

지난달 말, 공식적으로 현대차 그룹이 보스턴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 인수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인수 이후 지분 구조는 현대차 그룹이 80%, 소프트뱅크가 20%이라고 합니다. 꽤 오래전부터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익히 들어온 입장에서 이번 인수가 과연 어떤 목표를 위한 것인지, 그리고 각 회사에 시너지를 낼만한 접점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이번 글에는 뉴스 이외에 개인적인 견해가 많이 포함되어 있음을 참조 바랍니다.

 

목차

보스턴 다이내믹스에 대해 알려진 이야기들
보행 로봇에 대하여
보행 로봇과 오토노미 (autonomy)
현대차의 로보틱스
기대되는 시너지
우려의 시선 - 로봇 R&D는 돈 먹는 하마

 

보스턴 다이내믹스에 대해 알려진 이야기들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학부 전공 필수 수업 중 교수님께서 보여주신 BigDog 영상(2010)입니다. 벌써 십여 년이 지났네요. 그리고 이후에 WildCat이라는 영상(2013)도 꽤 유명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전공 공부를 갓 시작한 학생에게 로봇이라는 존재는 그저 미래 신기술에 불과했지 피부로 와닿을 만큼 보편적이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국내에서는 2000년 대 초반부터 개발되었던 카이스트의 휴보가 그나마 잘 알려져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로보틱스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모를 수가 없습니다. 저도 로보틱스와 아주 가까운 분야를 오랫동안 공부해온지라 기술력이 얼마나 뛰어나고 독보적인지 많이 전해 들어왔습니다. 지금도 여전한지는 모르겠지만, Legged Robot (보행 로봇)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거의 최고의 선택지라고 할 만큼 보스턴 다이내믹스에서 일하는 것을 영광스럽고 대단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을 많이 보았습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에서 일했던 경력 자체가 꽤나 희귀할 뿐만 아니라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여있는 곳이기도 하고, 또한 보스턴 다이내믹스에서는 그들의 자체 로봇 기술들을 데모 영상으로만 공개했지 자세한 내용을 외부로 공개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 기술력을 직접 경험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로봇 기술이라는 것이 국방 기술과 밀접한 연계성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미국인이 아닌 외국인의 국적으로는 들어가기 더 힘들다고도 하더군요.

 

보행 로봇에 대하여

외부인의 시각으로 보면 실제 기술력은 알 수가 없으나 데모 영상으로 비친 기술은 쉽게 범접하기 힘든 수준으로 보입니다. 비전문가들을 위해 아주 간단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보행 로봇이 다른 일반적인 단순한 로봇(몸통 + 바퀴 등)들에 비해 특히나 어려운 점은 바로 변수가 많다는 점입니다. 보행 로봇의 경우 각 관절을 컨트롤하는 알고리즘들이 필요한데, 관절이 많아짐에 따라 변수가 아주 많이 늘어나게 되고, 각 관절을 별개로 컨트롤함과 동시에 로봇 전체의 무게중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게다가 보행 로봇이 움직이게 되는 외부 환경 요인에도 로봇의 움직임이 영향을 받게 되는데, 예를 들어 바닥면의 마찰, 경사도, 장애물 등 다양한 요인이 보행 로봇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요소로 작용하게 됩니다.

 

두 다리로 높은 수준의 보행이 가능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데모 영상의 로봇들의 움직임이 여전히 부족해 보일 수도 있으나, 사실 이를 위해서는 엄청난 기술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최근 업데이트된 영상들의 보행 로봇들을 보면 아주 어려운 상황에서도 무게 중심을 잃지 않고, 여러 관절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기능하며 움직임을 보여주는데 이는 아주 고난도의 기술들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행 로봇과 오토노미 (autonomy)

다만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보행 로봇(혹은 robot arm과 같은 관절 로봇)에 집중하고 있는 회사이기 때문에, 자율 로봇 (autonomous robot) 기술력은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어, 자율 주행차의 경우 목표 지점이 있으면 지도와 센서 데이터 등을 이용하여 목적지까지 최적의 경로를 찾은 뒤 최적의 움직임으로 안전하게 갈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것이 주된 목표입니다. 내비게이션뿐만 아니라 어떤 주어진 태스크를 로봇의 자율적인 판단에 의해 수행하는 것도 오토노미로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로봇 청소기도 간단한 자율 로봇의 한 형태입니다. 보행 로봇의 경우에도 비슷한 문제를 적용시킬 수 있는데, 원하는 목표 지점까지 로봇이 자율적으로 경로 및 움직임을 설계하여 움직이는 것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에서도 스팟(Spot) 로봇으로 자율 내비게이션을 하는 영상을 이미 수년 전 공개하였습니다. (2018) 

 

 

최근에는 어느 수준까지 기술이 도달하였는지는 알려진 바 없으나, 보스턴 다이내믹스 이외에도 자율 주행 관련 회사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회사 및 연구소에서 관련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자율 로봇의 알고리즘 측면에서만 보면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의 경쟁력이 있는지 굉장히 궁금합니다. 

 

현대차의 로보틱스

정의선 현대차 그룹 회장이 작년 10월 밝힌 바에 따르면 “현대차 그룹 미래 사업의 50%는 자동차, 30%는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 20%는 로보틱스가 맡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국내 기사) 모두 로보틱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먼저 자동차의 경우 자율 주행 기술을 로보틱스 기술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자동차는 보행 로봇이 아닌 일종의 바퀴 로봇(Wheeled robot)으로 생각할 수 있겠네요. 교통 규칙을 준수하며 제한된 환경에서만 주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자율 주행만을 위한 데이터 준비, 모델링 및 알고리즘 연구가 필수적이겠지만, 큰 범주에서는 로보틱스 기술로 볼 수 있습니다. UAM의 경우도 주행하는 환경과 로봇의 형태가 달라질 뿐이지 추후 자율 알고리즘을 적용시키게 된다면 분명 유사 기술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20%의 로보틱스는 정확히 어떤 분야로 진출할지 잘 모르겠지만 기사에 따르면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 진출할 계획이 있다고 합니다.

 

기대되는 시너지

외부인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현재 현대차의 사업 분야와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과연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자율 주행을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자율 주행은 특수한 조건과 환경, 여러 로봇들이 함께 작동하는 멀티 로봇 시스템, 다소 다른 센싱 시스템, 로봇의 속도, 그리고 훨씬 까다로운 안전 조건 등이 있기 때문에 보행 로봇의 자율 알고리즘들을 그대로 가져와서 쓰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내부적으로 연구원들이 시스템 개발에 얼마나 도움을 주고받고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개인이 소유하는 자율 주행차가 아닌, 예를 들어 물건 배송에 사용되는 자율 주행차의 경우에는 보행 로봇이 라스트 마일 딜리버리(last-mile delivery)의 돌파구가 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자율 주행이 가능한 운송 차량이 배송지 주소에 도착했더라도, 차량 도로에서부터 고객의 집 앞까지의 배송이 여전히 필요합니다. 만약 자율 주행차량에 있던 보행 로봇이 자동차가 접근하지 못하는 배송지의 문 앞까지 최종 배송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시너지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물론 상용화에 따른 다양한 현실적인 문제는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미국에서도 라스트 마일 딜리버리를 위한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있고 아마존 등의 큰 기업에서도 중요성을 인지하여 연구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분야입니다. 현대차에서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형식은 아니겠지만, 물류 기업들을 상대로 라스트마일 딜리버리가 가능한 자율 주행 차량을 판매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현대차의 차량 제조 공장에서 업무 자동화를 위해 로봇들이 사용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공장들에서 어느 정도의 자동화가 이루어지는지 잘 모르겠지만, 현재의 자동화보다 훨씬 고도의 숙련된 기술이 요구되는 작업까지도 자동화가 가능해진다면 현대차 입장에서는 비용 절감의 효과가, 그리고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훨씬 완성도 높은 차량을 구입할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려의 시선 - 로봇 R&D는 돈 먹는 하마

 

 

 

하지만 사실 보행 로봇의 경우 비용의 측면에서 큰 우려가 있습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선보인 로봇들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사용 과정에서 고장 및 파손이 일어났을 때 유지 보수의 재정 및 시간적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실제 보스턴 다이내믹스 홈페이지에서 구입 가능한 스팟(Spot)의 경우 가격이 $74,500 USD, 한화로 약 8천6백만 원입니다. 현대차 생산 공정의 장점을 활용하여 로봇의 대량 생산 등이 가능해질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다 하더라도 가격을 얼마나 절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공장에서 활용되는 로봇에서 더 나아간 상용화 수준의 활용을 위해서는 비용 절감이 반드시 필요할 것 같습니다.

 

보행 로봇과 아주 밀접한 휴머노이드 로봇의 경우 일본에서 오래전부터 많은 연구 및 투자가 있어왔습니다. 유명한 휴머노이드 로봇들은 주로 일본 로봇들이 많았었는데, 예를 들어 혼다가 2000년부터 개발한 아시모(Asimo)가 있습니다. 2000년 대 미디어에서 자주 소개되어 많은 분들에게 친숙할 것입니다. 아시모는 2018년을 끝으로 혼다에서 연구 개발이 중단이 되었는데, 이유는 돈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랜 기간 혼다라는 전 세계적인 대기업에서 어마어마한 개발 비용을 투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여전히 상업화의 벽에 부딪혀 시장에서 사장되어버렸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개발된 기술들은 남게 되었겠지만요.

 

혼다의 아시모

 

아시모의 예를 언급한 이유는, 로봇 연구 개발은 어마어마한 자본이 들어가는 '돈 먹는 하마'가 될 수 있습니다. 주변 로봇 연구를 하는 연구소 지인들에 따르면 로봇 부품, 센서 하나에 몇 천, 혹은 억 단위를 지출하는 게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로봇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인력들 또한 고도의 전문인력이기 때문에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서도 많은 투자가 필요할 것입니다. 아무리 큰 기업이라 할지라도 상업화에 대한 확실한 길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빛을 보지 못하고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사실 자율 주행만 해도 많은 기업들이 뛰어들었고, 관련 스타트업들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상용화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때까지 과연 자금난 없이 생존할 수 있는 회사가 많을지 의문입니다. 업계에서는 투자금이 바닥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말들이 많습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이미 2013년 구글이 인수했다가 2017년 소프트뱅크에 모든 지분을 매각하였습니다. 당시 토요타 리서치도 (Toyota Research Institute) 인수에 큰 관심을 가졌다가 포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구글과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결별에 대해서는 많은 루머가 떠돌았는데, 그중 구글에서 사람과 친화적인 로봇을 개발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 요구를 했으나 그런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룹 간에 마찰이 있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상업화에 대한 직접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는 확인된 바 없지만, 보스턴 다이내믹스뿐만 아니라 수많은 로보틱스 회사들의 가장 큰 숙명이 바로 상업화 및 대중화가 아닐까 합니다. 인공 지능이 지배하는 4차 산업시대가 도래된 지금, 이제는 과연 로봇이 세상에 나오기 적절한 시기가 된 것인지, 혹은 아직도 여전히 너무 이른 것인지 지켜봐야겠습니다. 현대차가 과연 어떤 상생의 길을 제시할지도 궁금해지네요.

 

 

 

지난 달 인수 이후 공개된 영상을 끝으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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